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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비 오리지널다시, 아이와 산을 오르다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는 방법 #등산 #가족취미

다시, 아이와 산을 오르다


“인수야, 엄마가 인수랑 산에 올랐던 글을 읽고 글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어때? 우리 산에 다시 다닐까?” 

아이가 잠깐 멈춰 생각하고 나는 기다린다. 

“그래. 엄마가 작가가 된다는데 내가 도와줘야지” 

아이와 산행 시즌2의 개막을 알리는 대답이 들려온다.


아이가 내 코 밑까지 컸을 때다. 코 박고 핸드폰 게임하는 아이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하자 ‘에이씨’라고 했다. 그 순간, 눈앞에 아이가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그동안 키운 과정이 ‘에이씨’ 하는 소리와 편집되어 ‘이 꼴 보려 키웠던가’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시시때때로 생각나면 출렁이는 감정들이 버거웠다. 양육 선배들은 이 시기를 또 어떻게 지나갔을까 궁금했지만 조언이 들리지는 않는 상태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남자아이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났었으니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아이와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높은 산을 함께 넘으며 나는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내 뇌에 최신 정보를 새겨갔다. 아이가 큰 걸 느끼자 아이와 적절한 거리도 알아졌다. 


식탁 옆에 3개의 지도가 나란히 붙어있다. 맨 왼편의 지도에는 산맥, 강 표시가 잘 되어있다. 색의 변화로 산맥의 높이와 바다 깊이를 알 수 있다. 가운데 붙은 지도는 전국에 가볼 만한 곳이 빼곡히 표시되어 있다. 지도 전문 회사에서 만든 최신판 관광지도다. 한눈에 보는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가려는 지역이 정해지면 참고하기에 좋다. 오른쪽 지도는 등산용품 회사에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100 산이 표시되어 있다. 아이와 다녀왔던 설악산, 마니산, 북한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지리산, 한라산은 초록, 연두, 노랑, 주황색이 드러나 있고 나머지 산 들은 다녀올 날을 기다리며 은박 속에 숨어 있다. 


아들은 학급 친구들과 갈 봄 여행 후보지 발표 준비로 바쁘다. 엄마와 갈 산까지 골라야 해서 지도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우리 남쪽에 산은 안 가본 것 같은데. 계룡산에 가보고 싶어”

“거기 도사들이 수련하는 산으로 유명해. 인수가 좋아하는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 도사들도 거기서 수련했을 거야.”

지도를 보며 계룡산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본다. 머릿속 지도가 펼쳐지고 목적지까지 도로가 뻗어간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멈췄던 학교 일상이 재개되고 있다. 아이들의 경합 끝에 6학년의 봄 여행지는 제주도로 결정되었다. 산행은 여행 가기 전 주로 잡혔다. 아이가 여행 전에 컨디션 조절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계룡산은 이동 시간이 길어 다음으로 미뤄졌다. 좀 더 가까운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둘째 어린이집 선생님의 가정방문날 서로 근황을 나누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산 얘기로 옮겨졌다. 선생님이 산을 많이 다니는 분이었다. 한 시간 반쯤 거리에 있는 가리산이 아이와 오르기 좋다며 추천해 주었다. 서로 다녔던 산들을 얘기하다 보니 식탁 위로 전국의 산들이 펼쳐졌다. 도전 100 산 지도에서 가리산을 찾아 이름 부분에 은박지를 살짝 벗겨 놓았다. 어린이집도 그동안 멈췄던 활동들이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산에 다녀와 아이는 제주로 봄 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주말에는 1박 2일 어린이집 전체조합원 들살이가 예정되었다. 산행을 조금 더 집 근처로 정해야 체력과 시간 안배가 적절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어디가 좋을까. 변하는 상황 따라 아이와 산행 장소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상에서 틈틈이 여행이 이어졌다. 


“나 보러 소요산 역까지 올 수 있어?”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점심 먹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일을 조정할 수 있어서 친구의 직장 교대시간에 맞춰 다녀왔다. 친구는 내 산행 계획을 듣더니 손사래를 쳤다. 

“산에 가기 늦었어. 날파리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낮엔 또 얼마나 더운데. 산에 가기 좋은 때 다 지났다, 얘!” 

내 아들 또래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얘기에 산에 가기 좋은 시간대와 복장에 대한 힌트를 얻어왔다. 


우리 집은 북한산 아래에 있다. 집 근처 산은 잘 안 가게 된다고 하지만 휴가 때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과 백운대 정상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아이들이 커서는 영봉까지 아이 둘을 데리고 갔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였다. 오빠는 빨리 가고 싶은데 동생은 앉아서 개미를 봐야 했다. 결국 큰 아이는 답답해 울고 동생은 오빠가 화낸다고 울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도와드릴까요?” 하는데 손짓하며 그냥 가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가 업고 가기엔 너무 커진 후로 가족 산행은 주말 일정에서 빠졌다. 


“북한산을 갈까?”

“거긴 갔었잖아.”

“그럼 도봉산 갈래?”

“응 거긴 엄마 혼자만 갔었잖아. 나 도봉산 가고 싶어”


디데이를 며칠 남기고 도봉산으로 결정됐다. 일요일 오전에 출발해 더워지기 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이제 도봉산의 코스들을 살펴 정하는 일이 남았다. 도봉산 자운봉까지 가는 것은 이번엔 무리다. 다리 뭉친 것이 며칠 가면 여행에 지장이 갈 수 있다. 마침 원통사 가는 길을 통해 영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길이 완만했었다. 원통사에서 북한산 방향으로 가지 않고 도봉산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으면 이번 코스로 적당할 것 같았다. 블로그를 찾으니 우리가 가려는 길과 딱 맞는 길로 다녀왔다는 글은 안 보인다.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우이암까지 다녀온 글과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우이암까지 다녀갔다는 길을 종합해보니 4시간 정도 잡으면 될 것 같다. 아이와 갈 때 한 시간 정도 더 걸리는 걸 감안하더라도 오전 8시에 출발하면 더운 시간 전에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출발 시간도 정해졌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통제구간은 없는지 확인했다. 정상에 cctv가 설치된 산은 정상 날씨를 홈페이지 통해 직접 볼 수 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안내된 탐방 코스 중에 ‘우이암 코스’가 도봉탐방지원센터부터 우이암까지로 편도 1시간 반으로 소개 돼있다. 난이도 ‘하’이다. 우이탐방지원센터부터 원통사까지는 가봤던 길인데 원통사에서 우이암 넘어가는 길이 초행길이다. 마땅한 설명도 못 찾아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이암을 넘어가서는 도봉탐방지원센터 가는 표지판을 찾아야 했다. 이 모르겠는 구간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산행하기 쉬운 구간이 될 것이다. 당일 아침 편의점에 들러 물 두 병과 아이가 원하는 간식만 사서 다녀오기로 했다. 가벼운 등산복 차림에 등산 스틱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우이’암’에 오르려면 장갑은 필요할 것 같았다. 



큰 얼개는 아이와 함께 계속 의논해 왔는데 새로운 길을 찾고 싶다는데 마음이 쏠려 세부 코스를 나 혼자 정하고 있는 걸 몰랐다. 우리 아이가 누구인가. 자기표현 잘하라고 꾸준히 격려 받고 자라지 않았는가. 후폭풍을 짐작도 못한 채 산행은 시작되었다. 


우리 집의 일요일은 한없이 늦잠 자는 날이다. 아이와 일찍 갔다 더워지기 전에 오는 것으로 얘기가 되어 있어서 7시 반쯤 깨우니 잘 일어났다. 가방은 아이 나들이 보조가방을 내가 메었다. 핸드폰과 카드 한 장 넣고 등산 앱을 계속 켜고 갈 거라 보조 배터리도  챙겼다. 집 앞 편의점에서 물 한 병, 아이는 옥수수수염차를 골랐다. 아이가 간식으로 초코바 하나만 고르길래 내가 소시지와 풍선껌을 추가했다. 편의점 주인이 자리를 비워 계산 기다리다 시간이 길어졌다. 자, 드디어 출발이다. 


도봉산을 가기로 했으니 버스 타고 도봉산으로 바로 가자는 아이에게 북한산을 넘어가 도봉산에서 돌아오자고 했다. 이걸 왜 지금 얘기하고 있지 싶어 아차 싶었다. 우이 가족캠핑장을 지나 원통사 팻말을 보고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조금 가니 음식점 주변에 뛰놀던 닭들이 모두 닭집에 모여있다. 지난번에 원통사 탑에 달린 예쁜 전등을 보여주고 싶어 가족과 함께 갔다가 둘째의 업어달라가 시작되자 돌아왔던 곳인데 아이가 왔었던 걸 기억했다. 음식점 족구장을 지나자 날파리가 등산로를 한가운데 커튼처럼 막고 있다. 


“엄마 귀에 날파리 들어간 것 같아!” 아이가 질색한다. 내 얼굴에도 날파리가 부딪히는 느낌이 난다. 지금은 등산할 때가 아니라고 손사래 치던 친구가 떠오른다. 

“날파리가 밝은데 찾아 귀에서 곧 나올 거야.” 다행히 좀 더 걸으니 아이도 날파리도 금세 잦아든다. 완만하게 이어진 오르막 거치니 산속에 파 묻혀 있는 원통사가 보인다. 

“어, 벌써 다 왔네” 아이가 12시까지 집에 돌아가는 게 목표였다는 걸 이 때는 몰랐다. 

“내가 난이도 ‘하’라고 했잖아.”


원통사의 나지막한 불경 소리를 들으며 경내로 들어서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뿌연 하늘은 아쉽지만 잠실타워까지 보인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커다란 가방을 메고 쉬는 분들께 우이암까지 가는 길을 물으니 표지판도 없는 길을 가리킨다. 큰 배낭을 멘 사람들이 궁금했는데 일부는 암벽 등반하는 분들이고 일부는 능선 따라 멀리까지 등산하는 사람들이었다. 내 집 앞 산이 큰 산인 것을 새삼 느낀다. 산행을 떠올리면 지리산, 설악산을 먼저 생각했는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소요산까지 연결해 등산하기도 했다. 아들과 경내에 들어서니 그늘 벤치를 양보해주시던 할머니는 젊어서는 능선 타고 많이 다녔는데 내일 모래가 팔십이라 이만큼씩만 오른다고 하셨다. 송추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좋다고 알려주는 눈빛이 반짝였다. 곧 팔십 세라니 믿기지 않았다. 설악산에 철마다 올라오신다는 칠십 대 할머니 얘기를 전해드렸다. 


우이암 가는 길로 들어서니 네 발로 바위를 오르게 된다. 갑자기 난이도가 상승했다. 여태까지 싱글벙글하던 아이의 말 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다시 도봉산으로 넘어가는 길을 묻고 있는데 아이는 왔던 길로 돌아가면 안 되냐고 한다. 

“응, 상관없어. 오늘은 힘들지 않을 만큼만 가자”

“그런데 도봉산 가기로 했으니까 도봉산으로 하산해 보는 게 어때?” 

아이 컨디션이 우선이었다가 새로운 길로 가는 게 우선이었다가 내 안에서 우선순위가 왔다 갔다 한다. 우이암에 오르고 도봉산 정상들이 한눈에 보이니 더 넘어가 보고 싶다. 우이암까지 2.4km 거리를 한 시간 반쯤 걸려 도착했다. 우이암 도착을 잘 느낄 새도 없이 아이는 도봉산으로 내려가려는 내 기세를 느끼고 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엄마 맘대로 할 거잖아”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거지만 저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내가 가고 싶은 마음을 잘 전달하려 해 봤다. 어제 저녁쯤 이야기 나눴으면 여유있는 대화가 가능했을텐데 산 정상에서 이 얘기를 하고 있을까 싶었다. 나는 올라온 길 보다 더 쉬울 거라는 사람들 얘기에 더 도봉산 쪽으로 내려가고 싶고 아이는 거리가 길어 질 것 같아 원점회귀가 더 하고 싶었다. 나는 지도에 없는 새로운 코스를 가 보는 게 중요하고 아이는 12시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했다는 걸 이 때는 잘 몰랐다. 도봉 탐방센터까지 3.5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발견하자 아이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럼 저기로 가면 한라산에 올라간 거리만큼이 되는 거잖아!”

“에이~ 거긴 편도가 그만큼인 거지. 내려오는 것까지 한라산이 훨씬 길지~”

“꼭대기에서는 헬기 타고 내려왔다 치고. 소백산은 정상이 데크여서 편했는데. 치, 그럼 이리로 내려가면 소백산만큼은 올라간 거네!” 

불평에 나오는 비유가 참 듣기 좋다. 경험한 것들이 이렇게 녹아 나오는구나 싶어 아이 짜증을 들으며 감탄했다.  

난이도 ‘하’ 였어도 오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다녔던 산들보다 쉬워져 아이가 힘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구상하고 가는 사람은 힘들어도 실현되는 걸 보는 재미가 있는데 큰 그림을 모르고 끌려가는 사람은 힘들기 마련이다. 


도봉탐방센터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어렵게 결정되었다. 방향을 정하기까지 힘들었지 어느 쪽이든 내리막길은 금세 갈 수 있다. 사람들이 이정표로 얘기해준 “천진사”가 곧 나타났다. 아이는 “바보사”라고 바꿔 말했다. 심기가 불편하시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도봉산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넘쳐났다. 코로나 이후에 처음 산행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도봉산 탐방로 입구가 둘레길들과 연결되어 있어 어린 아이와 온 사람들도 많고 어르신들도 많았다. 동네 산 분위기가 물씬 났다. 뜨뜻한 밥을 먹는 것까지가 내 산행의 계획이었는데 아이는 팥빙수나 먹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팥빙수를 먼저 먹으면 밥이 맛이 없잖아”

“밥을 먼저 먹으면 팥빙수가 맛이 없잖아” 

한참의 실랑이 끝에 이번에 내가 볼멘 목소리로 져준다. 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고 배부를 만한 것들도 같이 주문해 먹고 한 숨 돌리다 집에 왔다. 


산에 갈 때 아이는 눈에 띄게 키가 커져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도 커져가고 있을 테다. 나는 산에 갈 때 마다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보니 나는 내가 그리던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지리를 잘 알고, 아이 속도에 맞춰 산을 다닐 수 있는 어른이 점점 더 되어 가고 있다. 아, 맞다. 내가 먹고 싶은 걸 양보할 수 있는 멋진 어른도 되어가고 있다. 

#parents



안녕나무

육아하는 엄마


전산일하다 백일출가. 가정을 수행처 삼아 육아 십 년. 번아웃이 반복되어 나를 관찰 중. 대충 재밌고 가볍게 살려 노오력합니다. 일상의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이와 산에 오르는 방법 시리즈


01    다시, 아이와 산을 오르다

02    정상까지 안 가도 산행은 산행

03    가족이 합심해 엉망으로 만든 산행

04    도전! 한라산 오르기

05     아이와 함께 쓴 계룡산 산행기

06    죽으려고 환장하고 떠난 가족 지리산 종주

07    설악산 대청봉 가다 만 이야기

08    태풍이 다가오는 지리산에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문비 오리지널

🔭 아이와 손 잡고 천체관측 입문 시리즈


📚 가족 독서와 책육아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