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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비 오리지널태풍이 다가오는 지리산에서

아이와 산에 오르는 방법, 대망의 마지막 편 지리산 #등산 #가족취미 #지리산

“이번엔 어디 산으로 갈까?” 하는 질문에서부터 새로운 산행이 시작된다. 여러 번의 산행을 통해 의논하는 실력이 쌓였다.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산행 코스는 힘들더라도 정상까지 빠르게 올라가는 길이다. 그래야 주말 게임 시간이 한 시간이라도 더 확보되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중요한 것을 알게 되고는 집에 가고 싶은 아들과 새로운 곳에 간 김에 맛집에 들리고 싶은 것으로 충돌하지 않는다. 내려와 바로 시원한 것 들이키고 아들이 원하는 분식을 간단히 먹는 식으로 다툼 없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명절에 할아버지 뵈러 다녀오면서 그 근처에 아빠가 소풍 다녔던 산을 다녀오자 제안하니 “왜 그렇게 낮은 산을 가려고 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설악산에서 등산 초보가 왜 이렇게 높은 산만 오냐며 다시는 천 미터 넘는 산은 안 오겠다던 녀석이 그 사이 마음이 변했다. “오, 그래? 나는 지리산 천왕봉을 언젠가 함께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 거기 갈래?” 물으니 아이가 답이 없다. 침묵으로 수락하셨다는 부처님의 대답법을 떠올리며 “가겠다”는 뜻으로 듣고 천왕봉에 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천왕봉은 1,915m 높이로 지리산의 최고봉이자 남한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한라산과 더불어 남한에서 1900m가 넘는 두 개의 봉우리 중 하나다. 이 곳을 아들과 함께 갈 기회가 생기다니, 감개무량했다. 삼 년 전에 둘째가 업고 갈 수 있는 마지막 해라며 가족들을 끌고 가듯 다녀왔던 지리산은 성삼재에서 출발해 천왕봉 방향으로 향해가다 뱀사골로 내려왔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리산은 어디서 출발하든 주봉인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대피소가 가장 가깝다. 이곳에서 하루 묵으며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본 적이 있다. 아들과 다시 한 번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다. 장터목까지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은 백무동코스로 편도 4시간에 최단코스인 만큼 오르막이 계속되는 길이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 점심 먹고 산행을 시작하면 해지기 전에 장터목 대피소 도착이 가능할 것이다. 남편이 함께 간다고 해서 주말 대피소 예약을 알아보니 금요일에만 대기 자리가 있다. 남편은 휴가를 내었고 대피소는 취소 자리가 생겼다. 


준비해갈 식사는 저녁, 아침 두 끼다. 여러 번 가니 일정을 정하는 동시에 머리 속으로 가방 짐이 척척 싸진다.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로 대피소에서 모포를 빌려주지 않아 침낭이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집에 있는 것은 캠핑용이라 부피가 컸다. 배낭에 넣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넣을 수 없이 자리를 차지했다. 등산용 침낭 중 부피가 작은 것은 주먹 4개 만했다. 새벽에 천왕봉에 오를 때 헤드랜턴도 필요하다. 버너도 이 참에 구입하기로 했다. 집 앞에 등산용품점이 있어 필요한 것들을 쉽게 구입 할 수 있었다.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하산하는 날 비 예보가 있다. 그 뿐 아니라 역대급 태풍 힌남노의 방향이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졌다. 입산 금지 되면 대피소에서 안내 문자가 올 것이다. 판단은 국립공원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드디어 당일, 자는 아들을 깨워 새벽에 출발했다. 남편이 운전하기로 해서 아이는 차에서 가는 동안 더 잤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며 날씨를 주시했다. 오른쪽 차 창으론 높고 맑은 가을에 솜사탕을 잡아 길게 뺀 듯 옅은 흰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앞 창으로는 딴 세상인 듯 흐린 하늘에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구름 사이 구멍으로 맑은 하늘이 살짝 보인다. 구름만 넘어가면 맑은 하늘이 기다리는 듯했다. 왼쪽 창 밖은 이번 산행은 글렀다고 얘기하는 듯이 날도 어둡고 구름이 뒤엉켜 흐르고 있다. 온통 잿빛이다. 과연 어떤 날씨가 기다리고 있을까. 


인월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성삼재로 갈 때도 들려 점심을 먹었던 곳이다. 마트에서 대피소에서 먹을 고기와 김치를 샀다. 가벼운 코펠을 준비 못해 근처에서 사보자 했었다. 파는 곳을 못 찾아 1회용 알루미늄 냄비를 샀다. 편의점에서 즉석 라면 끓이는 기계에 올렸던 뚜껑 없는 은색 냄비 같이 생겼다. 남편은 식당을 고르면서부터 빨리 가야 한다며 재촉했다. 이러다 7시까지 못 간다, 왜 이렇게 느리냐고 했다. 


 “인수야 빨리 가자, 아빠 지금 급하시네” 라고 말은 했지만 왜 저렇게 서두를까 싶었다. 인월 하나로 마트부터 백무동 코스 입구 주차장까지 꼬불꼬불 뱀처럼 이어진 길을 아들이 좋아하는 K-팝을 들으며 갔다. 빗방을이 차창에 하나 둘 부딪혀 왔다. 주차장은 산으로 이어진 길 끝자락에 버스터미널의 바로 맞은편 있었다. 이렇게 가깝구나. 다음번엔 버스를 타고 와도 좋겠다.


차를 주차하면서 남편은 지금 올라가면 천왕봉까지 못 다녀 오겠다고 푸념했다. 

“오늘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거였어?” 

“내가 말 했잖아” 

“안 했는데” 

남편이 인월에서 왜 그리 서둘렀나 알게 되었다. 몇 시까지 주차장에 도착해야 천왕봉에 오를 수 있으니 서두르자고 했으면 좋았겠다 전했다. 나는 내일 새벽 날씨가 어떻게 바뀌는지가 궁금했지 오늘은 못 오른다 여기고 있었다. 아들과 산을 타며 하나씩 맞춰갔듯 남편과도 새롭게 맞춰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함께 가려면 함께 의논해 하나를 선택 해야만 할 테니.  


주차를 마치고 각자 배낭을 매고 스틱을 챙겨 든 시간은 열 두 시였다. 남편은 25년만의 천왕봉행이라 했다. 드릉드릉~ 추억 대방출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탐방센터까지 가기 전에 길가에 작은 음식점도 있고 커피숍도 있었다. 산을 들어서니 운동 기구들이 놓일 법한 작은 광장이 있다. 천왕봉을 향하는 화살표가 그려진 팻말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계단을 올라 방향을 트니 돌에 이불처럼 초록 이끼가 덮여 있다. 그 위로 색을 잃은 잎들이 내려앉았다. 같은 곳에 오랫동안 자리 지키고 있는 것들 속을 지난다. 이제부터 정지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된다. 



삼십 분을 올랐는데 땀 범벅이 되었다. 내가 신발끈을 묶겠다 하니 앞서 가던 아이가 내 쪽으로 내려온다. “내려오지마! 절대로 내려오지마! 산에 올라갈 땐 내려오면 손해야” 하고 남편이 외친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다. 한 시간이 지나자 데크길이 나온다. 끝없이 오르막 연속인 바위길을 걷다 데크길을 만나니 꽃길을 만난 듯 했다. 헉헉대며 오르는 나를 돌아보며 생활체육인 둘이 대화를 나눈다. 수영에 한창 빠져 있는 남편은 수영 한 시간 하는 것의 반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 대회에 참가했던 아들은 한 술 더 떠 검도 3분 대련보다 오늘 등산이 쉽다고 한다. 나도 헬스로 근육을 많이 늘린 터라 등산 가면 몸이 많이 가벼워진 걸 느낄 거라 했는데 초반 1시간은 여전히 힘들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나는 한 시간은 꾸준히 걸은 후에야 몸이 좀 풀렸다. 


남편은 적극적인 페이스 메이커를 작정하고 나섰다. 뒤쳐지는 나를 앞장 세웠다. 내가 쉰다고 멈출라 치면 “등속도 운동으로 계속 가는 게 안 힘들어. 멈추지 마!” 라는 소리로 등을 떠밀었다. 아이고 잔소리야, 하며 멈추려다 발걸음을 떼었다. 한 시간 반이 걸려 ‘참샘’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샘이 있는 여기서 밥을 해 먹고 올라갔다고 한다. 하산하는 분이 이제 올라 언제 내려오냐 궁금해 한다. 대피소를 예약했다 하니 끄덕이며 내려가신다. 탐방소를 지날 때 대피소 예약 명단에 있는지 확인 받은 터였다. 참샘에서 마을에서 인월 마트서 사 온 자두를 닦았다. 살이 많고 맛있었다. 


오르막이 끝났다. 길이 편해지니 한결 수월했다. 4시간이 걸린다고 안내 되어 있는 길을 3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 등산 역사에 길이 남을 산행이다. 안내된 예상 등산 시간보다 빨리 올라간 건 처음이다. 남편은 아들에게 “니 엄마가 빨라져 산악인의 평균 속도에 도달했다”고 평했다. ‘대회도 아닌데 뭘’ 싶으면서도 이렇게도 빨리 올라올 수 있구나 싶다. 뒤에서 잔소리로 밀어주던 남편의 덕이다. 엉덩이가 따가워 앉을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는 소감 발표를 했다. 



장터목은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변의 그 어느 산도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시선이 닿는 곳 끝까지 구비구비 펼쳐진 모습이 장관인데 아쉬웠다. 천왕봉 올라가는 길도 표지판 위 계단부터 구름 커튼이 쳐져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니 땀에 젖은 옷이 금세 식어 추워졌다. 오늘 천왕봉을 오를지 의논했다. 의외로 쉬고 싶은 건 나고 둘은 천왕봉에 다녀오고 싶어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내일 새벽에 날씨를 보고 오르던지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다. 천왕봉 오를 수 있는 시간이 4시까지 인데 아직 10분 전이었다. 공단 직원도 하나도 안 보일텐데 뭐하러 올라가냐고 한다. 옷 갈아입고 쉬기로 했다. 한 시간쯤 쉬었다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바람 소리를 녹음하니 스피커 쪽에 바람이 들어가는 소리가 “쉬이이이잉~” “투투투투투”하고 부딪히는 음이 들린다. 잠바를 입어도 춥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방을 배정 받고 짐을 풀었다. 


대피소가 텅 비어 혼자 2층을 다 쓰겠다 싶었는데 저녁을 해 먹으러 취사실로 가는 중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우비가 젖어 있다. 우리와 반대 방향에서 종주해 오는 분들인듯 했다. 대피소 옆자리 분은 연하천에서 넘어오는데 바람이 거세서 날아갈 뻔 했다고 알려줬다. 라면 끓일 물을 뜨려 계단을 내려갔다 왔다. 화장실도 밖에 있으니 산 정상의 쎈 바람을 맞으며 밖으로 다닐 일들은 계속 생겼다. 


비바람을 뚫고 이제 막 도착해 취사실로 들어서는 젊은이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취사실에서 라면국에 햇반밥과 고기를 구워 먹었다. 가방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온 우리와 달리 부부가 함께 올라온 팀은 꺼내는 반찬 수가 우리 집에서 먹는 것 보다 많았다. 자주 오시는 분들은 패킹 실력이 남달랐다. 버너, 코펠, 음식들을 두 손에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우리와 달리 등산 배낭에서 보냉백을 꺼내 간단하게 들고 다녔다. 가방이 있으니 아침 식사거리를 한 켠에 두고 다니기도 좋았다. 소등 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대피소 안은 조용하다. 날씨 예보가 좋지 않아서 인지 대피소에 있는 어린이는 우리 집 아들 한 명 뿐이다. 늦게까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지만 취사실과 탈의실이 밖에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조용히 쉬며 서로를 배려했다. 



바람이 슁~ 부는 소리와 안개 낀 장터목 모습을 영상에 담아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도시에서는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일상이 이어지게 많은 것이 갖춰져 있지만 이렇게 조금 벗어나면 날씨 따라 꼼짝없이 행동 반경이 제한된다. 새삼 편리한 도시가 낯설게 다가온다. 서로를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 우리는 도시를 만들어 온 걸까. 도시에 두고 온 둘째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따뜻하고 포근한 친구네 아파트에서 파자마파티 중이다. 가정끼리 교류가 많은 공동 육아를 하고 있어 큰 아이와 시간 보낼 때 둘째도 친구네서 잘 지내 좋다. 통화를 위해 찬 바람 속으로 다시 나갔다. 위이이이이잉~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방안에서 친구와 색칠놀이를 하고 있는 딸에게 안부를 전한다. 친구와 노느라 재밌는 기운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진다. 


누워 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간다. 잠이 안 와 누워 다리를 주물러 보고 물 한 모금 마셔본다. 발이 아직 뜨겁다. 동네 등산용품 가게서 가장 부피가 작았던 거위털 침낭이 오늘 날씨에는 너무 덥다. 집에서 쓰는 작은 담요를 가져 온 분이 있었는데 아직은 그 정도도 충분했다. 옆자리 누우신 분이 가족끼리 와 좋아보인다고 말을 건네신다. 자기는 가족들이 안 와 친구들과 다니는 중인데 나이 들며 무릎이 아파 친구들이 하나 둘 줄어들어 아쉽다 하신다. 아랫층에 77세 할아버지가 있다는 소식도 알려준다. 


비 오는 날 대피소에서는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김이 펄펄 나는 몸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 이가 있고, 새벽 산 길을 떠나기 전에 서로 우비를 잘 입었나 봐주고 출발하자는 눈빛을 주고 받는 친구들이 있다. 서로 잘 쉬게 배려하고 필요한 것들을 나눈다. 어린이에게는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한다. 남편과는 아이가 커서 멀리 떠나거나 떠났다 돌아 왔을 때 다시 이곳을 찾자고 했다.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9시-10시 사이에만 비 소식이 없다. 천왕봉은 가는 길은 어제보다 구름 커튼이 더 두터워졌다. 눈 앞에 바람에 따라 안개가 굴러다니는 게 보인다. 종주를 하는 분들은 이미 출발했다. 가득 찼던 대피소가 헐렁해졌다. 올라올 때 3시간 반 만에 왔으니 내려가는 길이 부담이 없다. 내리막 처음은 거의 평지길 걷는 길이다. 화장실 한번 다녀와도 비바람에 금세 체온을 뺏긴다. 아침을 안 먹고 바로 출발할까 하다가 든든하게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배 속이 든든해야 변동하는 날씨에 대응하기가 수월할 듯하다. 날씨는 어쩌지 못하지만 몸 상태는 조금 조절해볼 여지가 있다. 


하산길에 바람을 걱정했으나 태풍이 남에서 북으로 북상 중이라 우리 가는 방향에는 바람이 없었다. 비바람도 아니다. 능선에선 바람이 셀 거라 예상했는데 괜찮았다. 얼른 아이의 우비를 벗기고 잠바도 벗겼다. 걷기 시작하면 열이 나고 땀이 금방 찰 것이다. 변한 상황에 맞게 복장을 다시 정비하고 출발했다. 내려가는 길에 남편은 아이에게 주목나무를 찾아 알려준다. 살아서 백 년, 죽어서 천 년을 산다는 주목나무를 소개하며 고향 산소에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자리들을 알려준다. 내려갈 길은 한참이고 보이는 것은 온통 나무와 흙 뿐이다. 길 따라 가며 의식따라 이야기들이 흘러 나온다. 남편은 지리산 노래도 불렀다가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도 아이에게 들려준다. 시원하고 걷기 좋은 날씨다. 대화의 주제는 곳곳에 세워 놓은 반달가슴곰을 조심하라는 팻말따라 갑자기 곰이나 맷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로 옮겨갔다. 어디로 피할 것인가로 열띤 토론이 이어진다. 


두 시간 내려오니 소지봉이다. 대피소에서 2.5km를 왔고 백무동까지 3.0km가 남았다. 이제부터 급강하 구간이다. 길이 젖어 있어 다리에 힘을 주며 걸었더니 후들거린다. 아들은 빨리 가서 게임을 하겠다며 속도를 낸다. 두 시간이면 내려가겠다며 호언장담하던 남편과 아들이 나 때문에 느리다고 성화다. 사진도 찍고 천천히 가고 싶어 둘을 먼저 보냈다. 나는 올라갈 때 만큼 시간이 걸려 내려왔다. 남편과 함께 점심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아빠가 운전하려면 점심 먹으며 충분히 쉬어야 한다며 식당에 들렸다. 매운 오리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지리산을 양쪽 방향에서 한 번씩 와 보니 중간에 올라가는 길도 눈에 들어온다. 음정으로 올라와 장터목으로 능선따라 걷고 싶다는 계획이 세워진다. 이 정도 난이도면 둘째도 같이 올 수 있겠다. 내려오는 길에 ‘곰’에 꽂힌 아들은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을 자는 겨울과 곰이 먹이가 충분해 사람 다니는 길까지 내려오지 않는 여름에만 오겠다고 한다. 아들은 곰의 생태를 품고 돌아간다. 가족이 지리산을 품고 돌아간다. 

#parents



안녕나무

육아하는 엄마


전산일하다 백일출가. 가정을 수행처 삼아 육아 십 년. 번아웃이 반복되어 나를 관찰 중. 대충 재밌고 가볍게 살려 노오력합니다. 일상의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이와 산에 오르는 방법 시리즈


01    다시, 아이와 산을 오르다

02    정상까지 안 가도 산행은 산행

03    가족이 합심해 엉망으로 만든 산행

04     도전! 한라산 오르기 

05    아이와 함께 쓴 계룡산 산행기

06    죽으려고 환장하고 떠난 가족 지리산 종주

07    설악산 대청봉 가다 만 이야기

08    태풍이 다가오는 지리산에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문비 오리지널

🔭 아이와 손 잡고 천체관측 입문 시리즈


📚 가족 독서와 책육아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