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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비 오리지널죽으려고 환장하고 떠난 가족 지리산 종주

온 가족이 지리산 종주가 가능하냐고? 못할 건 뭐야! #등산 #가족취미 #지리산

아이를 키워보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다. 길가다 아이가 우는 건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한계를 알아가는 중이라는 것. 그걸 알게 되자 드러누워 떼쓰는 아이를 담담하게 보고 있는 부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한계라고 말 없는 말로 알려주는 부모의 대화법도 들린다. 아이들은 행복하게 놀고 있고 뒤에서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찰나 미소 뒤에 놓인 고단한 일상도 안다. 순한 아이도 말 잘 듣는 아이도 끼니에 간식, 이 닦고 씻기는 일은 시간 흐르며 같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최근에는 가족 여행이 즐겁지가 않다는 걸 알았다. 자가용을 타고, 휴가복을 차려 입고 놀러 가는 길이 왜 즐겁지 않지? 아이가 둘인데 왜 두 배로 행복하지 않은 거지? 당연히 가족 여행은 행복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으니 “즐거워야 할” 여행에서 싸우며 돌아오는 길엔 혼란스러워하며 그 원인을 찾았다. 상대에 맞춰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여행은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여행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시작하자 덜 부딪히고 돌아오는 길에 만족도가 높아졌다.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를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아이와 처음으로 ‘바다’에서 놀기 위해 여행을 갔다. 가족 여행이 즐거운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자 사춘기와도 불만족스러울지언정 싸우지는 않는 여행이 가능해졌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가 부모를 따라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10세 미만까지 인 듯 하다. 큰 아이가 열 살을 지나니 ‘안간다’는 의사표현을 해왔다. 여행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업고라도 어디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나이는 3세까지인 것 같다. 그 이후엔 아이 취향이 확실해진다. 성별이 다른 아이를 목욕탕에 데리고 갈 수 없는 때도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아들이 열 살을 막 지나고 있고 둘째가 아직 3살일 때 나는 더 늦기 전에 아이 둘을 데리고 지리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돌아보니 그 때가 정말로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노고단에서 봤던 별빛 때문이었다. 새벽에 눈앞까지 내려와 있던 별빛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별빛을 보기 위해 지리산 품속을 기꺼이 함께 통과하고 싶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리산 종주를 가자고 했더니 남편은 무모한 계획이라며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라고 했다.  평소 남편답지 않은 거친 말이었다. 아마도 산행을 가면 둘째를 업어야 하는 것이 자기 몫이라는 것을 아는 자의 당연한 ‘발악’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거친 말이 고막에 울림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가고 싶다는 마음에 미동도 일지 않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리산에 가는 일이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기 보다 '올해 지나면 못 간다'가 더 마음 속에서 분명했다. 예정에 없던 ‘전업 양육자’로 산 지 십 년이 되는 해였다. 예상대로 살아지는 삶이 없다 해도 지난 10년에 대해 한 매듭을 짓고 가고 싶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컸고, 나의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지리산의 기운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겁먹은 사람과 함께 먼 길을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의 걱정을 존중해 그의 말대로 정말 죽을 곳인지 살 곳인지 노고단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대피소 체험도 해보기로 했다. 직접 해보니 할 만했고, 몇 가지 발견된 문제점은 수정해서 한 달 후로 지리산 종주 일정을 잡았다.


노고단 가는 길, 성삼재에 차를 세워놓고 어린이와 걸어가기 좋다

드디어 지리산 종주를 떠나다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그 사이 둘째를 업고 갈 등산 캐리어를 더 튼튼한 것으로 바꿨다. 아이도 장시간 타기 편할 발 받침 등의 요소가 추가되었다. 대신 남편 짐이 안정감을 대가로 2kg 늘었다. 큰 아이의 신발도 평소 신고 다니던 운동화 대신 제 발에 꼭 맞는 등산화로 빌려왔다. 누가 산에 이런 걸 가져오느냐 한 소리 들었던 버너도 약이 몸체안에 들어가는 뚱뚱한 사각 형태에서 손바닥만한 삼발이 불구멍에 약은 선을 이어 연결 하는 것으로 바꿔왔다. 주변에 물건을 빌릴 때마다 대단하다고, 잘 다녀오라는 격려를 들었다. 남편과는 사뭇 다른 이웃들의 반응들은 준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지리산 종주 가능성 타진”을 위해 왔을 때는 노고단까지 2.7km의 완만한 경사를 두 시간만 걸으면 되었지만 이번 실전에서는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10km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지리산이 높은 산이니 가파른 오르막도 만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해낼 것 같았다. 이 밑도 끝도 없었던 믿음은 뭐였을까. 한 달 내에 국립공원 대피소 사용은 이틀만 가능했다. 낮에 아이들과 여행하듯 자차로 이동해 노고단 대피소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해 연하천 대피소에서 1박 하는 것으로 코스를 짰다. 그렇게 지리산에서 2박을 예정했다. 어른들은 밤기차로 이동해 새벽 산행으로 시작하면 이틀에 천왕봉까지 갈 수 있을 테지만 아이들과 새벽 산행을 할 수는 없다. 지리산을 넘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아이를 달래는 일까지 만들면 안된다.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으려 신중했다. 종주를 위해서는 아이들 컨디션 좋게 하며 이동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환경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둘째가 안심할 수 있게 저번에 다녀온 곳 또 가는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주었다. "산에 가서 저번에 봤던 다람쥐 만나고 오는 거야. 두 밤 자야 많이 만날 수 있으니 우리 두 밤 자고 오자. 우리 사탕이랑 젤리 많~이 먹고 오자." 

 

성삼재에 차를 주차하고 각자의 배낭을 짊어졌다. 남편의 기억 속에 있는 20년 전 길에 비해 깜짝 놀랄 만큼 편하게 바뀐 길을 두 시간 걸어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했다. 저녁은 햇반, 스팸, 라면으로 나름 밥, 국, 찬 세트로 구성해 지어먹었다. 밥투정하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다들 코를 박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안개 가득했던 대피소의 아침. 별은 보이지 않을 뿐, 거기 있을 거야.

다음날 새벽에 아침 지으러 나갔더니 어제보다 안개가 더 자욱하다. 

“엄마 잠이 안와”

“쉿~~~~~” 

어젯밤 소등 후 캄캄한 대피소 곳곳에서 소리로 만났던 아이들이 모두 나와 문 앞에 모여든 것 같았다. 어디선가 다람쥐가 내려오자 잠이 덜 깬 아이들의 눈이 빤짝거렸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한 팀씩 목적지로 향해 떠나고 우리도 출발했다.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 걷기


큰 아이에게 지팡이로 쓸 긴 막대기 하나를 쥐어주니 재미나게 짚어가며 걷는다. 둘째를 업고 노고단 고개를 넘고, 돼지령을 지나고, 피아골 삼거리, 노루목까지 지나 삼도봉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지도상에 황토색으로 표시된 쉬운 길이다. 이제부터 붉은색 길이 시작된다. 삼도봉부터 토끼봉을 가는 길이 가파르게 오르내릴 예정이다.  


지리산 풍경. 노루목 안개. 우리가 안개 속 인지 구름 속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아이 둘과 등산을 계획하며 처음 보는 등산객들에게 간식과 응원을 받을 것은 예상치 못했다. 특히 큰 아이가 쉬고 있을 때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아이 업은 남편도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산행의 끝까지 격려와 응원이 이어졌다. 처음 만난 분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윽한 눈빛이 되어 그분들 아이들 어릴 때 데리고 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걸 보며 오기 잘했구나 싶었다. 우리 가족사에도 지리산이 들어왔으니.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어린아이가 부모보다 커져서 말하는 이의 뒤에 빙긋이 웃고 서 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땐 산이 여러 사람을 품어 길러내고 있었다. 이 산 안에서 처음 보는 이들과, 그리고 만나지 못했으나 뒤 이어 올 이들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을 걷는 동안 세상의 온갖 일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남은 생각이라고는 "아, 배낭 무거워, 간식 먹을까, 얼마 남았지, 밥은 뭐해먹을까" 뿐이었다. 뭘 먹을지도 등 짐 안에서 선택하고 이번에 못 먹으면 다음 끼에 먹게 될 뿐이었다. 고를 것도 없고 심각할 일도 없다.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면 행복하고, 달달한 간식 하나 먹으면 몸에서 힘이 나는 게 느껴졌다. 


"얘가 어떻게 여길 왔어요?" 


처음엔 긴장이 되었는지 힘든 줄도 모르다가 연하천 대피소를 2.4km 남겨 놓고는 길이 가도 가도 줄지 않기 시작했다. 마실 물까지 똑 떨어졌는데 큰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했다. 지나는 등산객들에 구하니 모두 물이 떨어졌다고 했다. 출발한 지 7시간이 다 되고 있었다. 대피소가 금방 나올 듯하면서도 안 나왔다. 

큰 숨 한번 쉬고 긴 계단 구간을 지나니 드디어 대피소가 모습을 보인다. 낯가림을 하는 작은 아이를 대피소 마당에 내려놓으니 낯선 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주변을 다람쥐마냥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작은 아이를 보는 분마다 “얘가 여길 어떻게 왔냐”며 눈이 동그래진다. 그때마다 바닥에서 눕혀 놓은 등산 캐리어를 가리키며 눈을 찡긋 해 보였다.

대피소에 도착해 지어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인 우리와 달리 남자 성인 둘이 장성한 아들을 각각 데리고 온 집의 배낭에서 집에서 쓰는 프라이팬이 나왔다. 나중엔 저것도 가능하겠구나. 우린 짐을 줄여야 해서 딱 필요한 것만 부피 작은 것으로 골라 가져왔다. 숙소 도착해 물 한 병 사 먹는데 참 귀했다. 간식 하나, 식사 한 끼가 저절로 소중해졌다. 깊은 산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자기 등에 질 수 있는 만큼의 짐만 들고 가고 있다.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말로는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소중했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그 시간에 출발하는 분이 있었다. 시계가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놀라서 어디까지 가는지 물으니 천왕봉 넘어까지 간다고 했다. 여자분 혼자 헤드랜턴 켜고 캄캄한 산 속으로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감동이 일었다. 안전산행을 기원해 드렸다. 둘째 날에도 대피소의 가장 늦은 출발자는 우리 가족이었다. 아이들 충분히 재우고, 밥 지어 먹이고, 컨디션 살피며 마당에서 시간 보내며 하루 새 낯익은 분들 배웅해드렸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제일 아껴둔 맛있는 간식을 꺼내 아이들에게 주고 가시는 분이 계셨다. 힘찬 응원과 함께. 

원래 계획은 원점회귀였는데 넘어왔던 길을 다시 구비구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는 길 내내 남편의 이십 년 전 지리산 기억들이 대방출됐다. 저기는 텐트를 쳤던 자리고, 그때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고 하는 이야기 위로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갔다. 드디어 식당들이 나타났다. 반가운 아스팔트 도로여! 식당에 들어가 다리 뻗고 앉아 지어 주는 밥을 귀하게 받아먹었다. 식당에서 택시를 불러줘서 차를 세워 둔 성삼재로 쉽게 왔다.  


아이들과 같이 산행하는 집들을 보니 아이들은 배낭을 메지 않고 맨 몸으로 오르게 하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는 큰 아이가 끝까지 배낭을 메고 완주했다. 동생을 어른 한 명이 업고 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는데 군말 없이 따라와주어 고마웠다. 이번 가족 산행은 아이의 올해 이룬 성취가 되어 학기 말에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대화에 지리산에 다녀온 이야기가 오르면 반짝하는 빛이 우리 사이에 떠오른다. 작은 아이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다람쥐와 안개, 깊은 숲과 사람들의 환대로 아이의 기억 이전의 기억으로, 정서로 남으리라 믿는다. 작은 아이는 등산 캐리어에서 낮잠도 자고 능선 구간에서는 캐리어에서 내려 오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쪼르륵 뛰어가며 완주했다. 능선길과 데크 계단은 작은 아이도 캐리어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어 했다. 지리산 종주 이후 작은 아이의 몸무게는 쑥쑥 늘었고 예상대로 이제는 동네 뒷산도 업고 갈 수 없게 되었다. 


돌아볼수록, 지리산 종주 다녀오길 잘했다. 참 잘했다. 

가족여행, 즐겁게 만들 ‘수도’ 있네! 

#parents



안녕나무

육아하는 엄마


전산일하다 백일출가. 가정을 수행처 삼아 육아 십 년. 번아웃이 반복되어 나를 관찰 중. 대충 재밌고 가볍게 살려 노오력합니다. 일상의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이와 산에 오르는 방법 시리즈


01    다시, 아이와 산을 오르다

02    정상까지 안 가도 산행은 산행

03    가족이 합심해 엉망으로 만든 산행

04    도전! 한라산 오르기 

05    아이와 함께 쓴 계룡산 산행기

06   죽으려고 환장하고 떠난 가족 지리산 종주

07    설악산 대청봉 가다 만 이야기

08    태풍이 다가오는 지리산에서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문비 오리지널

🔭 아이와 손 잡고 천체관측 입문 시리즈


📚 가족 독서와 책육아 시리즈